최신뉴스

[의협]코로나19 위기 틈탄 원격의료, 공공의대 날치기 용납안할 것

4,857 2020.05.15 12:30

첨부파일

짧은주소

본문

[의협]코로나19 위기 틈탄 원격의료, 공공의대 날치기 용납안할 것

- “코로나19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냐” 감염병 발(發) 졸속 정책 추진 작심 ‘비판’

- 사상초유 보건의료위기를 정략적으로 악용... 13만 의사 결사항전으로 막아낼 것

- 비대면진료 한계 명확, 대면진료 대체 못해... 산업 키우자고 안전 내팽개치는 ‘주객전도’

- 박근혜 정부에서 원격의료 극렬 반대한 민주당, 집권 후 입장 뒤집은 이유부터 해명해야

- 필수의료 살리기 외면하면서 의대 만든다고 공공의료 강화된다는 건 ‘억지’

- 기형적 의료제도 산물인 민간의료의 높은 경쟁력, 포스트 코로나19에 활용하는 지혜 필요

- 정치권 겉으로 공공의료 확충 외치지만 속에선 당선위해 지역구 유치 혈안... “겉과 속 달라”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준비한다는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19’ 담론을 내세워 그동안 의료계가 반대해 온 원격의료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에서 비대면 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원격의료를 통하여 새로운 시장을 열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공공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와 같은 정부와 정치권의 졸속적인 정책 추진을 결사 반대하며, 국내에서만 1만명 이상의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전세계적인 확산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현재진행형의 국가적 재난을 악용한 정부의 행위를 '사상초유의 보건의료위기의 정략적 악용'으로 규정하며 13만 의사의 이름으로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현재 정부가 ‘비대면 산업 육성’을 내세워 추진 중인 원격의료는 이미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의료계와의 논의 없이 일방추진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바 있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원격의료는 비대면 진료로서의 그 한계가 명확하여 진료의 질을 담보할 수 없고 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 소지가 불명확하다는 의료계의 반대 입장에 전적으로 힘을 보탰었다. “원격의료 등 의료영리화 정책은 추진되어서는 안되는 정책”, “5분 거리에 의사를 만날 수 있는 한국에 맞지 않는 제도”, “원격진료는 일부 재벌기업에게만 이익을 주고 국민 의료비 상승과 안전하지 못한 의료가 될 것” 등이 당시 민주당 중진 의원들의 실제 발언이다.

 

2014년 당시 원격의료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2014년과 지금, 정권이 바뀐 것 이외에 원격의료의 수 많은 문제점 가운데 단 하나라도 해결되거나 바뀐 것이 무엇이 있는가.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원격의료는 ‘의료인 사이의 진료 효율화 수단’으로 한정하겠다고 공약한바 있다. 그런데 지금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그 것과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정책에 ‘포스트 코로나19’라는 상표 하나를 덧붙여 국민의 이목을 속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이 있다면 정작 당사자인 의료계를 ‘패싱’하고 기재부와 산업계를 내세워 ‘산업 육성’, ‘고용 창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입장이 바뀐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부터 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대 설립 추진 역시 원격의료 만큼이나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방인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입원병상까지 민간 의사들이 참여하지 않은 곳이 없다. 거기에 민간의료기관들이 기꺼이 병상을 내놓고 환자 보호를 위한 폐쇄조치와 손실을 감내해냈다. 한편, 후방에서는 구분하기 힘든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민간 의사들이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며 비(非) 코로나19 환자들의 건강을 지켜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활약한, 그래서 ‘덕분에’ 캠페인의 주인공이 된 의료진들의 대부분은 민간의 의사였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보다 의사가 많다는, 국가가 공공의료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그래서 마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던 수 많은 나라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맥 없이 무너졌다. 대문만 열고 나가면 즉시 원하는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고 필요하면 당일에 검사와 치료까지 한번에 받을 수 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의료접근성, 그리고 의사와 의료기관을 단일 공보험 속에 가둬놓고도 정작 알아서 생존하라는 식의 이중적이고 무책임한 무한경쟁 속에서 저마다 극대화 된 진료역량, 무엇보다도 ‘기득권’, ‘이기주의집단’이라는 비난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서도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앞으로 나서는 의사들의 우직함이 바로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하는 대한민국 의료의 강점이다. 정부가 자화자찬하는 ‘K-방역’은 이러한 민간 의료의 높은 역량이 공공성으로 발휘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우리나라 민간 의료의 놀라운 힘은 기형적이고 모순적인 대한민국 의료제도가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제2의 코로나19에 대비하는 ‘포스트 코로나19’의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바로 이러한 강점을 십분 활용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공공의대를 졸업한 인력들을 반강제로 공공병원에 근무하도록 한다고 해서 보건의료위기를 공공부문의 힘만으로 극복해내겠다는 것은 착각이며 허구적 상상에 불과하다. 공공의료가 취약한 이유는 공공의대가 없거나 공공병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문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부족, 그리고 낮은 처우로 인하여 우수한 인재들이 공공부문에 종사하기를 꺼리며 관료제 특유의 비효율성과 근시안적 계획으로 인하여 경쟁력 제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공공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만이 공공의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료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 의대를 만들고 새 병원을 만들어 ‘공공’이라는 거대한 간판을 거는 것만이 공공의료라는 닫힌 사고로는 제 아무리 많은 사회적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민간의 각 분야의 의사들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하는 것이야 말로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공익에 기여하는 성격을 가지며 그 행위가 어디에서 행해지느냐에 따라 그 공공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염병 위기 때마다 지적되는 감염병 전문가의 부족을 살펴보라. 감염내과 전문의는 평소 타 의사들의 의뢰를 받아 환자의 감염 관련 협진을 수행하고 의료기관 감염관리를 총괄하는 고도의 의학적 자문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우리 의료제도는 이러한 기여에 대해서 지극히 인색한 보상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감염내과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과목이 되며 병원은 충분한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고 그 결과 소수가 과도한 업무부담을 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외상이나 중환자 치료, 분만, 흉부외과 분야의 의사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이유와도 같다. 이와 같은 필수의료 분야의 정상화 없이는 아무리 별도의 의대를 만든다고 해도 공공의료는 확충되지 않는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공공의대 설립이 아니라 공공성을 갖는, 생명 유지와 사회 안전에 필수적인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존중이야 말로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은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소속 지역에 공공의대를 유치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매 선거 때마다 지역구 선거공약으로 활용하고 있다. 원격의료와 마찬가지로 정책이 미칠 영향이나 그 실효성에 대한 고민은 미뤄둔채, 오직 경제 살리고 지역 살리겠다며 보건의료정책을 악용하는 꼴이다.

 

최근 줄어들었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생활 속 사회적 거리두기로의 완화를 시행하자마자 방역의 사각지대였던 클럽과 유흥가를 중심으로 감염이 재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어디까지 악화될지도 알 수 없으며 다수의 전문가들이 ‘세컨드 웨이브’가 시작되었다며 경고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요원하며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가 정리되기 까지는 최소한 4-5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과연 정부와 정치권이 한가하게 코로나19가 마치 끝나기라도 한것처럼 ‘포스트 코로나19’를 걱정할 때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보건의료’의 위기에서 배우고 내놓은 결론이 고작 ‘산업육성’과 ‘산술적인 인력증원’이라니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대한의사협회는 현재진행형의 코로나19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국민 건강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의료계의 총의를 모아 적극 대응해 나갈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2020. 5. 15.

대한의사협회


댓글목록

대피연님의 댓글

졸속적 공공의대 설립을 즉각 중단하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제20대 국회 임기 만료 직전인 다음주에 의사정원 확대의 일환으로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떠나가는 국회에서 보건의료정책이 졸속적으로 논의되는 현실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논의의 즉각적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동안 의료계는 ‘의료인력공급’이라는 국가백년지대계의 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아닌 일부 정치인의 지역 공약인 ‘공공의대 설립’이라는 근시안적인 인기영합 포퓰리즘적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의전원’ 정책 졸속추진과 같이 많은 부작용만 발생할 뿐 실패한 정책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의료인력공급’ 은 의료를 공급받는 인구의 감소 현상이 뚜렷한 국가적 상황을 고려하여 인구 감소에 따른 의료인력과잉 현상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재는 의대 정원 감소 정책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의사 인력을 양성하더라도 현 공공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과 민간 의료기관의 유기적 협력 관계 구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는 게 자명하다.

또한 우리나라는 의사 인력의 절대적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수도권으로의 인력 쏠림에 따라 지역별 의료 인력의 수급 불균형과 이로 인한 의료 격차의 발생이 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실태 조사 등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을 위한 정책 수립 등에 대한 체계적 노력 부족이라는 정부 정책의 실패가 공공의료 인력 부족의 근본 원인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양적이고 외형적인 인력 증원 보다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공공의료 취약성의 원인 파악과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한 작년 11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개최한 공청회 이후 직역별 의견 수렴 등의 보완적 논의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사태를 기화로 공공의료 인력 확충이라는 표면적인 명분을 내세워 공공의대 설립을 통과시키려는 국회의 움직임에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금번 코로나 19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 감염병 사태와 같이 의료계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정부가 민간의료와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민간의료의 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인 수단임이 증명되었다. 즉 공공의대 설립과 같은 불확실한 효과가 아닌, 보다 실효적이고 즉각적인 방안 마련을 통해 공공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이고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대책이라 할 것이다.

우리협회는 공공의료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공공의료 TF를 구성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 및 국회도 공공의대 설립이라는 잘못된 정책 추진에서 탈피하여 의료계와 함께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필요한 정책 및 법안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하길 촉구한다.

의료계, 정부 및 국회가 서로 협력하고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해 노력할 때 공공의료와 민간의료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는 바, 다시 한 번 졸속적인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논의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2020년 5월 15일

대한의사협회 회장  최대집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  박홍준
부산광역시의사회 회장  강대식
대구광역시의사회 회장  이성구
인천광역시의사회 회장  이광래
광주광역시의사회 회장  양동호
대전광역시의사회 회장  김영일
울산광역시의사회 회장  변태섭
경기도의사회 회장  이동욱
강원도의사회 회장  강석태
충청북도의사회 회장  안치석
충청남도의사회 회장  박상문
전라북도의사회 회장  백진현
전라남도의사회 회장  이필수
경상북도의사회 회장  장유석
경상남도의사회 회장  최성근
제주특별자치도의사회 회장  강지언

대피연님의 댓글

대회원 서신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대한의사협회 회장 최대집입니다.

코로나19사태 이후로 얼마나 어려움이 많으십니까. 국민건강을 위해 의료 최일선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계신 회원 여러분들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에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국민들께서 의료진 덕분을 외치시며 우리에게 크나큰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고 계십니다만, 다른 한쪽에서는 의료의 근간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불온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어 대단히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준비한다는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19’ 담론을 내세워 그동안 의료계가 반대해 온 원격의료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에서 비대면 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점을 빌미 삼아, 원격의료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열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공공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저는 이와 같은 정부와 정치권의 졸속적인 정책 추진을 적극 반대합니다.

국내에서만 1만명 이상의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전세계적인 확산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현재진행형의 국가적 재난을 악용한 정부의 행위를 저는 '사상초유의 보건의료위기의 정략적 악용'으로 규정하고자 합니다. 결코 대한의사협회와 13만 의사의 이름으로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현재 정부가 ‘비대면 산업 육성’을 내세워 추진 중인 원격의료는 이미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의료계와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적이 있습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원격의료는 비대면 진료로서의 그 한계가 명확하여 진료의 질을 담보할 수 없고, 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 소지가 불명확하다는 의료계의 반대 입장에 전적으로 힘을 보탰었습니다. “원격의료 등 의료영리화 정책은 추진되어서는 안되는 정책”, “5분 거리에 의사를 만날 수 있는 한국에 맞지 않는 제도”, “원격진료는 일부 재벌기업에게만 이익을 주고 국민 의료비 상승과 안전하지 못한 의료가 될 것” 등이 당시 민주당 중진 국회의원들의 실제 발언 내용입니다.

저는 2014년 당시 원격의료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2014년과 지금, 정권이 바뀐 것 이외에 원격의료의 수 많은 문제점 가운데 단 하나라도 해결되거나 바뀐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원격의료는 ‘의료인 사이의 진료 효율화 수단’으로 한정하겠다고 공약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그것과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정책에 ‘포스트 코로나19’라는 상표 하나를 덧붙여 국민의 이목을 속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정작 당사자인 의료계를 ‘패싱’하고 기재부와 산업계를 내세워 ‘산업 육성’, ‘고용 창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입장이 바뀐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공공의대 설립 추진 역시 원격의료 만큼이나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입원병상까지 민간 의사들이 참여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거기에 민간의료기관들이 기꺼이 병상을 내놓고 환자 보호를 위한 폐쇄조치와 손실을 감내했습니다.

한편 후방에서는, 구분해내기 힘든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민간 의사들이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며 비(非) 코로나19 환자들의 건강을 지켜냈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활약한, 그래서 ‘덕분에’ 캠페인의 주인공이 된 의료진들의 대부분은 민간의 의사였다는 것입니다.

반면, 공공의료에 투자를 많이 한다고 알려져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던 수많은 나라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대문만 열고 나가면 즉시 원하는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고 필요하면 당일에 검사와 치료까지 한번에 받을 수 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의료접근성, 그리고 의사와 의료기관을 단일 공보험 속에 가둬놓고도 정작 알아서 생존하라는 식의 이중적이고 무책임한 무한경쟁 속에서 저마다 극대화 된 진료역량, 무엇보다도 ‘기득권’, ‘이기주의집단’이라는 비난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서도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앞으로 나서는 의사들의 우직함이 바로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하는 대한민국 의료의 강점입니다. 정부가 자화자찬하는 ‘K-방역’은 이러한 민간 의료의 높은 역량이 공공성으로 발휘된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사실 이러한 우리나라 민간 의료의 놀라운 힘은 기형적이고 모순적인 대한민국 의료제도가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제2의 코로나19에 대비하는 ‘포스트 코로나19’의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바로 이러한 강점을 십분 활용하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공공의대를 졸업한 인력들을 반강제로 공공병원에 근무하도록 한다고 해서 보건의료위기를 공공부문의 힘만으로 극복해내겠다는 것은 착각이며 허구적 상상에 불과합니다. 공공의료가 취약한 이유는 공공의대가 없거나 공공병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문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부족, 그리고 낮은 처우로 인하여 우수한 인재들이 공공부문에 종사하기를 꺼리며 관료제 특유의 비효율성과 근시안적 계획으로 인하여 경쟁력 제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공공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만이 공공의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료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 의대를 만들고 새 병원을 만들어 ‘공공’이라는 거대한 간판을 거는 것만이 공공의료라는 닫힌 사고로는, 제 아무리 많은 사회적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민간 각 분야의 의사들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입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공익에 기여하는 성격을 가지며, 그 행위가 어디에서 행해지느냐에 따라 그 공공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감염병 위기 때마다 지적되는 감염병 전문가의 부족을 살펴봐야 합니다. 감염내과 전문의는 평소 타 의사들의 의뢰를 받아 환자의 감염 관련 협진을 수행하고 의료기관 감염관리를 총괄하는 고도의 의학적 자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료제도는 이러한 기여에 대해서 지극히 인색한 보상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감염내과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과목이 되며 병원은 충분한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고, 그 결과 소수가 과도한 업무부담을 안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외상이나 중환자 치료, 분만, 흉부외과 분야의 의사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이유와도 같습니다.

이와 같은 필수의료 분야의 정상화 없이는 아무리 별도의 의대를 만든다고 해도 공공의료는 확충되지 않습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공공의대 설립이 아니라 공공성을 갖는, 생명 유지와 사회 안전에 필수적인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존중이야말로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정치권은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소속 지역에 공공의대를 유치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매 선거 때마다 지역구 선거공약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원격의료와 마찬가지로 정책이 미칠 영향이나 그 실효성에 대한 고민은 미뤄둔 채, 오직 경제와 지역을 살리겠다며 보건의료정책을 악용하는 꼴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최근 줄어들었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가 생활 속 사회적 거리두기로의 완화를 시행하자마자 방역의 사각지대였던 클럽과 유흥가를 중심으로 감염이 재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어디까지 악화될지도 알 수 없으며, 다수의 전문가들이 ‘세컨드 웨이브’가 시작되었다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요원하며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가 정리되기까지는 최소한 4-5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상황입니다. 과연 정부와 정치권이 한가하게 코로나19가 마치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19’를 걱정할 때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국가보건의료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배우고 내놓은 결론이 고작 ‘산업육성’과 ‘산술적인 인력증원’이라니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저는 아직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국민 건강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이반행위로 규정하고, 의료계의 총의를 모아 적극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아무리 뉴 노멀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의료의 본질이 부정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역행되는 일이 용인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의료전문가로서 양심을 다해 본연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정책에 가닿을 수 있도록 힘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의협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주시고 동참해주셔야 할 이유입니다.

아울러, 의료기관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회원분들께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여러분이 국민건강을 지켜내는 코로나 전사였듯이, 대한의사협회는 잘못된 제도, 정책들과 싸워 회원 여러분을 지키는 전사가 되겠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 다시 일어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5월 15일
대한의사협회 회장 최대집 배상